장태완 소장
1931. 9. 13.~ 2010. 7. 26.
극중에 저 명대사가 있고 난 뒤 안타깝게도 패배하고 반란군에게 체포당했다. 이후 서빙고에서 45일간의 조사를 받은 뒤, 전두환에 의해 강제적으로 예편되고 6개월간의 연금 생활.
그의 가족들도 수난을 겪음
아버지 - "나라에 모반이 있을 때 충신은 모반자들에 의해 살아남을 수 없는 일" 이라는 말을 남기고 식음을 전폐하고 별세
외아들 - 82년에 행방불명 서울대학교 자연대에 입학해 그 해 자연대 수석을 차지했던 성호씨는 평소처럼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대문을 나선 지 한 달 만에 낙동강 근처 산기슭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96년경 김영삼 정권이 거대 비리 및 12.12 쿠데타의 책임을 물어 대머리와 보통사람을 잡아들이자, 증인으로 채택되어 두 사람과 같은 법정에 서기도 했다. 이때 증언을 마친 후 두 사람을 향해서 "한때는 함께 국방에 열심을 다하던 입장이었는데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 모르겠소." 라며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물론 두 사람은 천장이나 땅을 쳐다보며 묵묵부답.
2010년 7월 26일 숙환으로 별세하셨다. 향년 79세.
더 엿같은 현실은
장태완 장군 앞쪽에 있는 안현태는
반란군의 최측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