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수능 시험 사건 및 특징들
달타냥 | 조회 1,328 | 2014-11-13 00:30

1994수능(1993년 11월)
 
1차, 2차 시행. 수험생들은 두번의 수능 가운데 더 잘 나온 성적을 선택할수 있었으나 이 제도는 이후 폐지됨
 
 
1995수능(1994년 11월)
 
서울대에 원서접수한 서울과학고학생 141명 전원이 합격하는 신기록을 세움
 
 
1996수능(1995년 11월)
 
전년도에 비해 대폭 어려워짐. 마지막 대학본고사
 
 
1997수능(1996년 11월)
 
96수능보다 더 어려워짐. 400점 만점에 320점만 넘어도 서울법대, 서울의대, 치대가 가능한 점수
가,나,다,라군군 복수지원이 가능함
 
 
1998수능(1997년 11월)
 
97수능에 비해 크게 쉬워진 수능. 서울법대 합격선이 370점대로 올라감
 
 
1999수능(1998년 11월)
 
98수능보다 전체 평균 20점 상승. 사상 최초의 국가시험 만점자 탄생
 
 
2000수능(1999년 11월)
 
언어영역이 매우 어려웠으나 수리영역, 사회탐구, 과학탐구, 외국어영역이 모두 쉬워 전체 평균은 10점 정도 상승
 
 
2001수능(2000년 11월)
 
사상 최악의 물수능. 전년도보다 전체 평균 27점 상승. 만점자 66명(인문계 42명, 자연계 24명).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수능의 변별력을 줄이기위해 어려운 문제에 적은 배점을 하는 역배점을 시도함. 처음으로 실시된 제2외국어영역은 만점자가 무려 6만명에 달했음. 마지막 특차
 
 
2002수능(2001년 11월)
 
물수능과 대비되어 엄청난 고난이도로 전국 평균 66.5점 하락, 상위 50%도 50점 하락. 언론에서는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유력정치인인 이해찬 전 교육부장관을 비난할 목적으로 재수생들에 비해 성적이 크게 낮은 고3들을 이해찬의 교육정책으로 피해를 입은 '이해찬세대'라 불렀지만, 재수생이 고3생보다 성적이 좋은 현상은 그전에도 항상 마찬가지였음. 특차가 폐지되고 수시지원이 20%로 확대. 정시모집은 라군이 폐지되고 가,나,다 3개군으로 재편됨
 
 
2003수능(2002년 11월)
 
2002수능보다 체감난이도가 낮아 평균점수 향상이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전국 평균 20점 하락. 이때부터 수시모집에 합격하면 반드시 등록해야했으며 정시모집은 불가능해짐
 
 
2004수능(2003년 11월)
 
03수능보다 전국 평균점수 다소 상승. 언어영역의 복수정답시비가 크게 일음
 
 
2005수능(2004년 11월)
 
이때부터 400점 만점에서 500점 만점으로 개편됐으며 원점수는 비공개, 변환표준점수만이 공개됨. 광주시내 고등학교 학생 120명이 집단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적발됨(그러나 광주는 이후 6년간 전국 수능 1위를 고수함)
 
 
2008수능(2007년 11월)
 
참여정부 교육정책의 최대실패작이라는 수능등급제로 큰 혼란이 빚어짐. 점수가 일절 비공개되고 1~9등급으로만 공개. 대학입시지도와 원서접수에 큰 혼란을 빚은 등급제는 바로 폐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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